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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007. 영남일보
[동대구로에서] '저 거리의 암자' 김봉규<영남일보 문화체육부 차장> 살다보면 다양한 만남을 소화해야 한다. 유쾌한 만남도 있고, 정말 싫은 자리도 있다. 미리 예정된 자리나 의례적인 만남도 있고, 우연한 만남도 있다. 우연히 또는 갑자기 이뤄진 만남이면서도 멋지고 즐거운 자리가 가끔 찾아오기도 한다. 며칠 전, 대구 북구청 앞 한 식당에 퇴근 후 갑자기 가게 되었다. 퇴근하려고 할 즈음에 술자리를 한 번 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해 대구에 미술서점과 전시장을 갖춘 화랑을 오픈한 사람이었다. 시집을 내기도 했다. 마침 귀가하려던 참이어서 약속 장소로 갔다. 네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전화를 한 사람, 주로 다른 사람의 시에다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재즈 음악을 하는 대구예술대 교수, 그리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인이자 화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데이드림(daydream·본명 연세영)씨이다. 시에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는 '시노래 가수'와 화랑 대표는 같이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자리였다. 시노래 가수와 데이드림씨는 대학 선후배간이고, 데이드림씨는 화랑 대표가 운영하는 전시장에서 다음달에 노근리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전을 열기로 돼 있다고 했다. 교수와 시노래 가수 두 사람은 만날 약속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 역시 만나기 직전에 전화통화로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갑자기 마련된 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시노래 가수가 준비한 노래를 한 곡 불렀다. 데이드림씨가 지은 시 '노근리여 영원하라'에 곡을 붙인 노래였다.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감동하며 박수를 보냈다. 식사를 하며 술잔을 나누다 조용한 성품의 시노래 가수가 마음이 동했는지, 술 마시면 절대 노래를 안 부르지만 한 곡 하겠다며 다시 기타를 잡았다. 경남 의령에 있는 사찰인 유학사 주지 원담 스님(비구니)이 지은 시 '알 수 없는 나'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다. '구름인 것만 같다 아니바람인 것만 같다/ 나무였다가 돌멩이였다가 풀이었다가/ 지는 꽃잎처럼 어지럽다가 아주 먼 그리움이란다/ 시름시름 쓰러지는 숨결 숨결이라오.' 참 좋았다. 이 역시 처음 부른다고 했다. 조금 있다 한 곡 더 불렀다. 신달자 시인의 시 '저 거리의 암자'에 곡을 붙인 노래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걷어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소란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데 속을 후려치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이렇게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과 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데이드림씨가 기타를 좀 달라고 했다. 선배인 시노래 가수를 위해 방금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노래 '길'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작은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는 것 같았는데 잠시 동안 노래 하나를 만든 모양이었다. '한 발 두 발 걷다가 보면/ 많은 산들이 나를 에워싸 있고/ 넓은 길로만 걷다가 보면/ 좁은 길가에 쉬어갈 수가 없네/ 살다 보면 울 수 있지….' 문외한이 보기에는 놀라운 재능이었다. 데이드림씨는 TV드라마 '겨울연가' 테마곡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 사연이 특별했다. 결혼 후 가난한 생활을 했던 그는 10년 동안 부인의 생일 때마다 그녀를 위해 작곡을 하고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겨울연가 PD가 듣게 되고 곡이 좋다며 드라마 음악으로 사용하기를 요청했고, 10곡 가운데 6곡을 사용했다는 것.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뭔가를 하다 보면 그것이 빛을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같이 공감했다. 포장마차를 암자로 읽어내는 시인의 눈과 함께 한 4시간이 흘러갔다. 참석자들이 힘을 모아 의미있는 음악회를 해보기로 한 성과도 있었다. 이 자리에 흘렀던 순진한 마음들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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