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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禁> 주악천(奏樂天) 금동불의 전설
 <19禁> 주악천(奏樂天) 금동불의 전설 ‘터럭’ 피아니스트 데이드림이 들려주는 새콤발칙한 Sex이야기 性과 사랑, 음악과 로맨스- 전격 역사 스릴환타지소설 “불상의 뱃속에 들은 유물을 꺼내고 싶었다. 타임캡슐이자 기록물인 복장유물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미타여래가 계시는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로가든, 부처의 저주로 지옥불 나락으로 떨어지든 비밀의 커튼같은 그 옷을 실오라기 없이 벗기고 싶었다. 그러나 옥문을 열고나면 부처나 나나 사불(死佛)이 되고 마는것. 영험함과 불멸의 전설은 사라지고 정염(情炎)또한 먼지가 되는 것이었다” 1, 벌써 6개월째 석남(石男)이다. 아내의 불만은 쌓여갔다. 연주가 예전처럼 되지않았다. 하고싶은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어쩌다 조금 땀을 내더라도 이내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만하고 싶었다. 산재된 주위의 오만가지 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나보다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양약도 먹어봤다. 몸에 좋다는 녹용, 삼뿌리도 먹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로서 모든게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여자들이나, 당해보지않는 사람은 절대 알수 없는 자포자기의 그늘이 계속됐다.징하도록 암울했다. 내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이 돌자 동창 몇몇이 용하다는 한의원 몇곳을 소개했다. 꽃샘추이와 함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한의원을 찾았다. 新자궁단한의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어떤 자긍심을 갖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이 참 요상했다. 한의원 옆에서 흰가래떡을 굽는 노점상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여성에 좋은 어떤 환(丸)을 만들어 파는것 같은데 그게 대박이 났다고 했다. 습도가 있었던지 사람들의 알수없는 몸냄새와 한약 달인 냄새가 뒤엉켜있었다. 종로3가 근처의 한의원이었는데 원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젊었다.남자임에도 원장은 간호사들을 ‘언니야’라고 호칭했다. 아마도 여성들이 많이 출입하다보니 친근감을 주기위한 영업전략인것 같았다. 순번을 기다리고 영업자격증을 물끄러미 보고있으려니 옆에 앉아있던 환자 한분이 귓속말로 아들이 부친이 하던 한의원을 이어받아 하는것 같다고 했다.차례가 와서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수백개 점으로 찍힌 인체모형이 자랑스럽다는듯 서있었다. 원장은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사극전문 드라마작가’라고 말했다.내심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말을 조금 받아줬더니 내 얘기를 듣기보다는 맥을 집는데 쓰는 조그마한 도자기를 자랑하는데 더 열을 올렸다. 내가 약간 짜증을 냈다. 저으기 놀란 원장은 안경을 고쳐쓰고 곁눈질로 내 맥을 다시 집더니 대뜸 화장실에 가서 생식기 주변의 터럭 몇 올을 뽑아 오라고 했다. 영문을 몰랐으나 시키는대로 했다. 원장은 내게 한달에 성관계를 몇 번 하느냐고 대뜸 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을 못하겠다고 하자 원장은 뽑아온 터럭을 보며 윤기가 없어 매말라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침을 맞고 동대문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한의원엘 갔다. 진료실에 우산을 두고왔기 때문이다. 내꺼라면 그냥 잃어버린셈 치려 했는데 와이프가 유독 아끼는 우산이라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마침 간호사가 내 우산을 들고 서있었다. “혹시 이 우산! 손님꺼세욧?” 간호사 목소리가 초등학교 5학년 목소리였다. “ 아, 네에 제가 우산을 두고와서..그만..” 우산을 재차 확인한 뒤 출입문으로 나가려하는데 간호사가 내소매를 끌었다. “양위울결 때문에 오신 차완담님이시죠?” 한의원에서는 발기부전을 ‘양위울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네에 그런데요?” 간호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진료실에 원장과 간호사들이 없는걸 알고 내 스치듯 귀속말로 말했다. 필경 어깨가 축 쳐져있는 내게 동정심이 유발된것 같았다. “너무 상심하지마세요. 남자가 발기가 좀 안된다고 죄인가요? 중년나이 넘는 분들 대부분 그런걸로 많이오세요. 다음주에 약 지어가시겠지만 솔직히 침이나 약, 별 효능 없어요. 탕재는 그래도 중탕하는 곳보다는 조금 나으니까 건강 챙긴다 생각하고 드시구요. 그리고 이건 그냥 민간요법인데요. 일상생활 하시다가도 아무 생각없이 본인의 생식기 주변 괄약근을 습관처럼 오무렸다 폈다 해보세요. 이렇게요.이렇게... 여자간호사가 허리를 앞뒤로 모션을 취하는걸 보고 나는 한바탕 웃을뻔 했다. 그런데 그녀가 하도 진지하게 얘기하는 통에 나역시 미간에 인상을 쓰면서까지 얘기를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 1년 6개월만 꾸준히 하시면 효과 있으실거에요. 믿거나 말거나요. 그리고 젊은여자분 한번 만나보세요. 미성년자는 말구요. 중년의 회춘이랄까? 호홋. 제가 다음주까지만 여기서 일하거든요. 그래서 살짝 말씀드리는거에요. 그냥 참고하시라구요” 한의원 간호사여선지는 몰라도 ‘발기’니 회춘이니 하는 약간 민망한 단어를 그녀는 거리낌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 네에 고맙습니다,도움주셔서....” 창피했지만 고맙기도해서 우수간호사 스티커를 벽면에 한 장 붙여주고 나왔다. ‘간호사 이영미 친절 스마일직원’. 이미 칭찬스티커는 몇장 붙어있었다. 다음주에 그만둔다는 그 푼수간호사에게 이 스티커가 얼마나 도움될지는 잘몰랐다. 젖었던 우산은 거의 말라가고 있었고 간호사의 당돌한 말투는 집에 올때까지 귓가에서 맴돌았다. 어쨌든 4차원에서 사는듯한 간호사임엔 틀림없었다. 2. 아내가 일을 나가고나면 나는 늘 혼자 집에 남았다. 외딴섬에 떠있는 낡은배 같았다.유일하게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켜보는일은 털빠진 비둘기들의 먹이 구하는 소리와 거만한 수위아저씨들의 노닥거림뿐이었다. 보름전 709동 13층에서 어떤 애기엄마가 뛰어내려 자살했는데 아파트부인회에서 쉬쉬한다며 절대 밖으로 발설하지말라는 관리소장의 다짐어린 말소리가 들리는듯 했다.그래서인지 문만 닫아놓고 있으면 완벽한 내세상이었다.그 사각의 공간안에서는 내가 사장이었고 만년과장이었다. 회사생활을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던 나로서는 노트북과 내 머리통속에서 나오는 알량한 역사지식이 전부였다. 40세를 넘기고부터는 그마저도 고갈되고 일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젊고 유능한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는데다 예전처럼 인맥으로 대본을 집필하는게 아니라 이젠 사업적 계약에 의해 진행되는터라 어떻게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한마디로 드라마대본을 쓰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그날도 한의원에서 다려준 파우치를 빨대로 꽂아먹으며 골동은복 경매사이트에 접속했다. 푼수간호사가 알려준 ‘괄약근조여주기’도 잊지 않았다. 여느때와 같이 경매품을 서핑하고 있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다. ‘불상’이었다. 대부분 경매에 올라오는 불상은 백동이나 신주재료로 만들어진 조악한 것들이 태반이라 대략 5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인 물품이 많았다.강희어제니, 건륭어제이니 하는 근대 재현품들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본 불상은 입찰 시작가만 300만원이었다. 불상 한 개 시작가가 300만원이라니... 가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경매에 올라온 물건을 찬찬히 살펴보니 불상에서 느껴지는 품위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침 내 수중엔 돈이 있었다. SBC-TV에서 올 여름 사극 미니시리즈물을 준비하라는 조건으로 들어온 약간의 계약금이 있었다. 그런데... 3, “아뿔싸!” 경매 마감날짜를 놓쳐 불상 경매입찰을 못하고 말았다. 막내동생 제수씨가 둘째아이 해산이 임박한때여서 동생네가 사는 남양주를 오가다가 그만 날짜를 놓치고만 것이다. 다행히 관심물품으로 등록해 놓았던터라 판매자에게 급히 쪽지를 보냈다. 판매자 이름은 온숙희로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꼭 사고싶으니 답장을 달라고 했다. 내 느낌엔 통일신라시대때의 불상이 틀림없었다. 1주일만에 답신이 왔다.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연락이 왔다. 판매자는 입찰없이 그냥 개인끼리 판매하는건 경매 상도에 어긋나니 입찰을 짧게 이틀만 할테니 그때 입찰하라고 했다. 십년감수, 천만다행이었다. 저녁이 되자 물품이 경매로 올라왔다. 워낙 시작가가 3백만원이었던 터라 입찰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후, 며칠 피말리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주악천인불상(奏樂天人佛像)을 내손에 쥘수 있었다. 불상을 받고보니 역시 내가 예상했던대로 여느 불상이 아니었다.몸체를 조심히 흔들어보니 아래부분에서 ‘텁텁’ 소리가 났다. ‘복장유물’이었다. 복장유물은 대부분 불상을 만들 당시 뱃속에 제작한 사람의 이름, 오향, 오곡, 사리 등 다채로운 물건을 넣게 되는데 ‘텁텁’ 소리로 봐서 종이가 들어있는게 틀림없었다. 대부분 불상 뱃속에서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문화재급으로 인정하는게 고고학계의 룰이다. 내가 낙찰받은 불상에서도 복장유물이 확실히 있었다. 이제 이 뱃속의 유물을 꺼내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늦은 오후, 판매자로부터 쪽지가 날라왔다. 낙찰을 받으셨다 하더라도 행여 불상의 뱃속을 개복하면 절대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행여?”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이미 내가 내돈주고 비싼 값으로 낙찰을 받았는데 맘대로 할수 없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성질 급한 나는 쪽지를 받은지 얼마 되지않아 판매자에게 따져묻는 전화를 해댔다. 수화기 너머로 30대 중후반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몹시 떨리면서도 가녀린 목소리였다. 그녀는 낙찰자분께 죄송한 얘기지만 자신은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말씀드렸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전화를 하며 상대여성이 부친아(?)같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늦은 저녁에 전화가 한번 더 걸려왔다. 그녀는 불상을 넣었던 나무상자를 빠뜨린 부분도 있고 불상에 대해 잘알고 계시는 부친을 소개할테니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솔직히 소장자나 그녀가 궁금하기도 했고 불상에 대한 얘기를 조금이나마 들어볼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약속을 했다. 며칠뒤 나는 그녀가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았다. 중계동과 마들역을 지나자 수락산이 나왔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와서인지 3월의 봄은 상쾌하기까지했다. 잠시 시내를 빠져나왔을 뿐인데 사방이 모두 녹색정원같았다. 카페이름은 ‘마루’였다. 목조로 만든 계단이라 올라갈 때마다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냈다. 야외조명등 아래 바닥엔 내 몸의 두배는 넘을듯한 외국견 파트라슈가 미동도 없이 졸고 있었다. 여자가 먼저와서 앉아있었다. 예상대로 30대 중후반쯤 보였는데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이마가 좁고 짙은 쌍커플에 입술이 도툼하니 작았다. 그녀는 차를 간단히 시킨뒤 말문을 천천히 열었다. “안녕하세요. 장설아라고 합니다.이렇게까지 나오시라해서 미안합니다” “ 온? 온숙희씨가 아니구요? “제 어머니 이름으로 판매자등록을....” “아.. 그러셨군요... 판매자 이름을 다른이름으로 할수도 있겠지요... 그건 그렇고... 미안하긴요...뭐, 괜찮습니다. 오랫만에 자연도 보고 좋은데요. 낙찰받은 차완담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인기작가이구요.흠.” 나는 그녀가 묻지도 않았는데 허풍을 치면서까지 내 직업을 말했다.별로 놀라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테이블에 자동차 키를 내려놓는 그녀의 긴 손가락이 하얗게 빛났다. 그녀가 가끔씩 다리를 꼴때마다 샤넬향수 냄새가 났다. “네에, 음.. 저어...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린긴 그런데...아버지를 뵙게 해드리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좀 난처했다. 그 여자의 부친이라도 있어야 좀 덜 민망할텐데..이 먼곳까지 와서 단둘이 카페에 앉아 있는것 자체가 어색했다.특히 수락산이나 청평, 산정호수를 지나서부터는 아베크족이나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가는 일부 유부남녀들이 자주 다니는 코스라 자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옆자리에도 한 커플이 때 지난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지만 아무리봐도 부부같지는 않았다. 그녀도 나처럼 어색한지 물을 몇 번 입에 축이더니 다시 말을 계속 이어갔다. 글라스잔에서 그녀의 루즈묻은 입술자국이 봉긋한 꽃망울처럼 느껴졌다. “물건도 가져가셨는데 불상의 복장유물을 꺼내지말라고 말씀드려서..마음 많이 상하셨을거에요. 그냥 전...저희 아버지 유언이시라... 아버님이 좀 엄한 분이셨거든요...”. “유언이요?” 순간, 그녀에게 어떤 깊은 사연이 있을거란 확신이 생겨났다. “그럼 부친이 돌아가셨나요?“ “ 네에, 그 불상은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물품이었어요. 어떤 경로로 아버지가 그 불상을 갖게되신건지는 잘몰라요. 제가 네살인가 다섯살 때에도 그 불상이 저희집에 있었거든요. 평소 아버지는 검게 그을린 아주 오래된 나무 판자와 이 불상을 금고에 두시고 애지중지하셨어요. 저희 가족들은 아예 보거나 만지지도 못하게 했지요. 어떤 성역과도 같은 물건이랄까?. 어느땐 아버지가 하도 그 불상을 가족보다 소중하게 다루셔서 어린 마음에 그냥 내가 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때도 있었어요”. 나는 직감적으로 정말 제대로된 불상을 낙찰받았구나 쾌재를 불렀다. “근데 이 불상이 경매장에 어떻게해서 나오게된거죠?” 나는 시치미를 뚝 뗀채 어리숙하게 말을 던졌다. “아버지는 군단사령부 장군으로 예편하신뒤 포천지역에서 골동품상을 하셨어요. 저희 가족은 골동품 자체를 싫어했지요. 녹슬고 오래된 물건이 많아 꺼림직하기도 했고 뭣보다 저의 어머니는 절실한 기독교신자셨는데 그 불상이 늘상 기분 나쁘다고 그러셨거든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매일 다투셨어요. 결정적인건 아버지께서 불상에 심취한 나머지 어머니와의 잠자리까지 멀리하시게 됐다는거에요. 서재에서 불상을 가슴에 품고 주무시는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전 제가 성인이 되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불상을 미련없이 처분하겠다고 늘 마음 먹었었지요”. “지금도 어머니하고는 같이사시나요?” “그분 얘기는 꺼내지마세욧!” 그녀는 내 질문을 듣자 사무적인 말투를 던지더니 곧 말문을 닫아버렸다. 어떤 깊은 사연이 분명 있는것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럼 아버님은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아버지가 골동품상 하시면서 직업병이 생기셨어요. 부장독이라고...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산소 묘역속 부장품에서 뿜어져나오는 바이러스균 같은거 에요. 대부분 우리가 손쉽게 아는 오래된 책이나 묘에서 나온 흙, 상여에 붙인 괴면먼지, 묘에 같이 넣었던 옷가지 등이 다 포함되요 아버지는 골동품상을 수십년 넘게 하셨는데 일을 오래하시다가 그 병에 옮으신것 같아요. 돌아가실 즈음엔 어떤 약에 중독됐다는 헛소리도 하시고.. 몸에 난 털이 모두 빠지시기도 하셨었어요....” 부장품에서 나오는 바이러스균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몇 번 들어보았지만 털이 다 빠져 죽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 나 역시 걱정이 됐다. 혹시 낙찰받은 불상 표면에 묻은 바이러스균이 옮지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내심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 너무 걱정마세요 선생님께서 낙찰받으신 물건은 청동에 금박을 한거라 바이러스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요. 바이러스균은 대부분 흙이나 나무, 종이, 섬유에서 옮겨지거든요”. 옆테이블에 있던 중년 남녀들이 어느새 자리를 뜨고 없었다. 주위 창가를 둘러보니 두집 건너 호화모텔이 즐비했다. 모텔주차장에 세워진 대부분의 차량번호는 방패같은 설치물로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다. 요즘 경기가 불황이어도 숙박업만은 호황이라는데, 저곳에서 다 누가 자고 가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시계를 보려다가 우연히 그녀의 팔목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손과 발목엔 오묘한 문신이 그려져있었다. 내가 힐끔거리자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듯 자신의 오른팔을 왼손으로 쓰다듬었다. “ 아 이거요? 제가 좀 몸에 그림이 많죠? 타투에요. 전 문신을 그리는 아티스트에요. 문신 좋아하세요? “아 타투니스트시군요.. 아뇨 문신은 별로, 사우나에서 조폭들이 등짝에 한것 몇 번 본일이 있는데 보기 썩 좋진 않더라구요.맨살에다 검정 먹이나 잉크를 넣는것도 맘에 안들구요”. “ 아 네에 그러시군요. 좋아하시면 제가 그냥 해드릴수도 있는데...호홋. 하긴 저마다 취향은 다른거니까요” 나는 다시 불상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그럼 제가 낙찰받은 불상에 대해 맘대로 할수 없고 소유권에 대해서도 매번 댁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거죠?” 불상의 소유자가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치를 보고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그렇게까진 하실건 아니구요. 아버지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어릴때니까 잘 모르겠구요. 불상속에 들어있는 어떤 물건이 있었는데 자신이 죽은 뒤에도 불상을 열어보지말라는 유언이셨어요.그런데...” “그런데요?” “그런데 경매사이트에 불상을 내놓은 뒤 갑자기 저도 그 불상속의 뱃속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선생님께 복장유물을 꺼내지말라 말씀드렸지만 그 의도중엔 이렇게 선생님이 화내를 내시고 저에게 따지게끔 하려는 의도도 있었거든요”. “그럼 설아씨는 이미 제가 이렇게 나오리라 예상하셨나요?“. “ 네에 선생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꼭 나와주실거라 생각했었어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불상 하나 낙찰받았다가 이런 이상한 꼴을 접하게 된것이 이상했다. 어느덧 주변이 금세 컴컴해졌다. 아마도 교외 외곽이다보니 해가 금방 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좀 더디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녀에게서 어떤 신선감 같은게 느껴졌다. 그녀는 깔딱고개를 지나 석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근처 매기매운탕이 맛있다면서 먼곳까지 오셨는데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 마음과 달리 괜찮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불상가격이 300만원까지는 아닌것 같은데 입찰시작가를 너무 과하게 매긴 것 같아 그냥 보내드릴수가 없다고 했다. 타의반 자의반 그녀를 따라 석림사 근처 매운탕집에 갔다. 소주와 탕이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젊은시절 나는 영등포 카네기캬바레홀에서 웨이터시절을 2년 이상 겪어봐서 술에 대해서는 이골이 나있었다. 소주 한 두병은 술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내가 말할때마다까르르!~ 자주 웃어주기도 했고 서로간 말없이 음식을 먹기만 할때도 있었다. 그녀는 가끔씩 내 어깨를 때리면서 얘길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소주 세병인가 네병을 마시고 누구에겐가 자동차키를 준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가 잠들어있는 침대에서 아침을 맞았다. 꿈에선 불상의 이마에서 머리칼이 자라더니 내몸을 칭칭 감아오는 것이었다. 이후의 꿈은 형언할수 없을 정도로 난잡해 떠올리기 싫었다. 4. “일어나셨어요?” 등쪽이 약간 따끔따끔거리는 느낌에 잠이 깼다. 오전 9시였다. 이곳 지역에서 오전 9시면 점심때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윗통은 벗겨져 있었다. 내 착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무얼 발랐는지 번들거렸지만 어제 본 그녀의 모습보다는 순수해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 앞치마를 따라 좁은 어깨부터 힙선까지 내려오는 허리라인은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촉 떨어졌다. TV뉴스에서만 듣던 원나잇이 이런 것일까?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왔다. “어, 저어.. 제가 어제 실수를?.... 반사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목소리로 떠듬거리자 그녀는 내말에 싱겁게 웃었다. “네에 실수하셨어요. 아주 많이요... 혹 제가 실수했을 수도 있구요..아프진 않으셨나? 호홋.. 농담이구요. 별일 없었어요. 그냥 바로 곯아 떨어져 주무시던데요. 자신은 꼭 침대에서 자야한다면서.. 그바람에 전 소파에서 잠을 자서 좀 생고생은 했지만... 그녀는 사탕 달라는 어란아이 약올리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완담씨 어제 오른손 손가락에 낀 반지낀걸 보고 결혼한 거 알았어요. 한마디로 건드릴수 없었어요. 아무일 없었으니까 걱정마시고 편하게 생각해요. 전 이집 정리 되는대로 샌프란시스코로 가요. 혼자살기엔 너무 집이 커서 무섭고,,, 남동생이 거기 사는데 잘아는 금융업계 외국인형이 있는데 나를 소개하겠다고해서 몇년 가있게 되거나 아예 눌러 살수도 있을것 같아요. 지금 형편으론 선보러간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제 사진을 먼저 보냈는데 남자쪽에서 무척 맘에 들어하나봐요. 제 유산이 탐나던지 호홋.... 이리와서 커피 들어요”. 나이는 나보다 10년쯤 어려보였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투는 누나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내가 서둘러 옷을 입을땐 그녀도 슬쩍슬쩍 나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안보이는 화장실쪽으로 가서 정말 날 안건드렸나 내 물건을 슬쩍 튕겨봤다. 이상이 없어보였다. 탁 트인 정원, 5백여평 됨직한 앞마당은 잔디와 소나무, 우람한 석등, 각종 꽃들로 물들어있었다. 5. 아 난 이제 죽었다!~ 휴대폰을 보자 아내로부터 온 전화가 무려 9통, 방송국에서 온 문자메시지가 3통이나 와있었다. 일단 SBC 김주연 작가에게 문자메시지로 교외에 나와 있는데 서울 가는대로 아이템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곧 김작가에게 문자가 왔다. 울상짓는 이모티콘, ㅠㅠ와 함께 권국장이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 이번에도 쓸만한 아이템이 없으면 끝장이라고 했다.다혈질의 권국장은 화를 내다가도 대본만 좋으면 곧바로 풀어지는 스타일이었다. 문제는 와이프였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니까 설아는 편하게 전화하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아내는 내 전화에 아무 대꾸를 하지않고 있다가 몇초뒤 바로 꺼버렸다. 아마도 집에 가면 한바탕 할 것 같았다. 문자로 다독였다. 친구 장호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있는데 밧데리가 없었다고 둘러댔다. 바로 문자가 날라왔다.“당신 친구 장호아버님은 어떻게 네 번이나 돌아가셔?” 퉁명스럽게 답장이 왔다. 더 이상 변명을 늘어 놓을수가 없었다. 그녀는 기왕 늦은거 커피나 한잔하고 가라며 서둘러 커피를 타줬다. 커피향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정말 맛있었다. 루악 사향고양이똥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먹어보는것 같았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후 그녀는 부친의 서재와 보관실로 나를 데려갔다. 영화 인디애나존스에서나 나올법한 오래된 장소만큼 옛날 책들과 와당, 각종 골동품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 평소 아버지가 그 불상에 대해 애착이 있으셨던건 그 불상이 여느 불상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예요. 무척 아끼셨거든요. 제가 추측하건데 통일신라때 불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불상 옆엔 늘 통일신라 불상에 대한 책들이 놓여있었거든요. “설아가 원한다면 그 불상 개복하지않을께”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남녀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되면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된다는게 이런건가 싶었다. 약간 놀라는 눈치를 보이더니 그녀도 바로 나에게 오빠라고 불렀다. “그럼 제가 편하게 오빠라 부를께요. 근데 제 마음이 정말 바뀌었어요. 그 불상 뱃속을 열어주세요. 아버지 유언이라 제가 열수는 없고 오빠가 그 불상 복장유물 꺼내주세요. 저도 옆에 있을께요. 대신....” “대신... 뭐?” “오빠가 원하는 소원 한가지 들어드릴께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알면 기절초풍하시겠지만... 전 알고 있거든요. 오빠가 제게 원하는게 뭔지.... “내가 설아에게 원하는거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암튼 그런거 있어요. 오늘은 그냥 가세요 저 빨간날이에요“ 그녀는 제몸에팔장을 낀채 고개짓으로 화장대에 있는 생리패드를 가리켰다. “......” 6. 설아네집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등쪽 위가 가끔씩 아파왔다.진물이 난것 같기도 했었는데 며칠 진통제를 먹었더니 가라앉았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내 머리통속엔 불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동창들의 만남도 모두 뒤로 미를 정도였다. 설아가 왜 갑자기 마음을 돌려 복장유물을 열어달라고 했을까? 왜 엄마 얘기는 꺼내지않았을까? 의문의 꼬리를 물었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녀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남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것 같았다.남자에 대해 잘안다고 큰소리치는 여자치고 바람둥이를 못봤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버지가 엄한 군인이셨고 늘 명령하는 투에 남자를 사귀는 일에 병적으로 간섭했다는 설아의 얘기를 추론해 봤을때 반항심이 성인이 돼서야 발현된것이 아닌가 싶었다. 만난지 얼마 안되는 나를 통해 자신이 꽁꽁 닫아놓고 있었던 섹스관의 자물쇠를 자유롭게 열려고 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실험쥐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에 설아를 만난다면 그녀의 활화산같은 분출구가 거세게 터질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아니 반드시 그럴거라고 확신했다. 7. 이틀에 걸쳐 싸운뒤 아내는 문을 열어줬다. 시간은 물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불상은 저녁때마다 쑤세미로 소중하게 닦고 또 닦았다.어느땐 내가 설아의 돌아가신 아버지같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었다. 나는 내게 어떤 큰일이 벌어졌을 때마다 찾는 동창이 있었다. 무작정 전남에 사는 중학교동창 석창이를 만나러 목포로 내려갔다. 석창인 나를 중학교시절때부터 보호해준 보디가드 친구로 지금까지 사이를 돈독히하고 있다. 서울역엔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예전엔 서울역 2층엔 피아노무대가 있었다.내 친구기도 한 피아니스트 데이드림이란 친구가 가끔씩 그곳에서 연주를 해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무대가 철수되고 없어졌다. 역무원 얘기로는 아무나 와서 치라는 피아노를 그누구도 털끝하나 안건드렸다는 것이다. 열차중에서 가장 빠른 KTX를 순방향으로 끊었다. 목포에 갔더니 그의 운전기사가 목포역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석창인 나를 보자 두말할것 없이 반겨주었다. 기백억 원을 갖고있는 친구면서도 그의 진바지는 늘 무릎이 3센티이상 나와 있을 정도로 남루했다. “잘있었나? 완담. 넌 다좋은데 이름이 너무 조선시대스러워 완담이가 뭐냐 완담이가.... 서화담도 아니고 짜식” 석창이는 목포에서 큰 룸살롱을 7개나 보유하며 운영하는 준재벌급 유지다. 최근 조폭영화에서 나온 주인공과는 실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내가 호스티스들의 시중은 됐고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자 여자애들 두명 모두 돌려보냈다. 룸엔 석창이와 나만 남았다. 양주잔에 발렌타인 17년산 한잔을 쭈욱 들이킨 후 곧바로 불상 얘기를 꺼냈다. 불상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자 석창인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석창인 어떤일을 하다가도 놀라는 일이 있으면 자신이 차고있는 로렉스시계를 세계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삼천짜리를 천팔백에 싸게 샀다는 말도 빼놓지않고 했다. “담아~ 그거 내가 살까? 이마에 보석 박혔니? 나도 불상 좋아하는데...” “이마에 보석은 없고, 나중에 내가 좀 보다가 싫증나면 너줄게 싸게 넘길게 됐냐”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며칠전 그녀가 내게 말한 내용이 궁금해졌다.석창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석창아 그런데 내가 좀 궁금한게 있는데... 며칠전 우연히 알게된 여자가 있어. 어찌어찌하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됐다는데... 이건 내 얘긴 아니고 내 친구 얘기야...” “ 그래 너 얘기든, 친구 얘기든 내가 사회로 볼때 그쪽으로 대선배잖니 빠꿈이기도 하고 얘기해봐 언능” 룸안엔 이미 눈이 따가울 정도로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응 어떤 여자를 알게됐는데... 솔직히 내가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좀 끌렸거든. 그런데 그녀말이 자신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면 소원 한가지를 그냥 들어주겠다는거야. 도대체 그녀가 말하는 소원이 뭘까?“. “소원이라...아 여자의 소원. 소원...킬킬,,. 석창인 혼사서 한참동안 배를 쥐어잡으며 웃더니 겨우 말을 내밷었다. “너 그 여자가 말하는 소원이 뭔지 정말 모르겠어! 응? 남녀간에 소원 한가지가 뭐겠어? 응? 뭐겠냐고?” “그거?se...x.!." "그래 병신아 그거..." 석창은 두손으로 성행위하는 장면을 내게 해보였다. “근데 그걸 그여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바보같은놈. 덩치만 컸지.완전 얘에요. 그걸 일일이 얘기해줘야 아냐 응? 대부분 남자가 여자에게 짙은 호감을 갖게되면 남자 정낭에서 쿠퍼씨액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돼요. 막 분비가 되는거지.. 분수처럼 응... 그건 조절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니야.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거지. 근데 그게 웃기게도 호르몬이 같은 남자의 후각엔 잘 캐치가 안돼. 대신 여자의 후각으로는 1초도 안돼서 냄새로 알수 있다는거야. “ 냄새?” “ 응 여자가 느끼는 남자냄새같은거지” “아하, 그래서 설아가 나에게 그렇게 말한거였구나” “너 얘기네 보니까...아이고...이 짐승같은 놈” 석창인 정말 연애쪽으로는 프로중 프로였다. 그날도 석창이와 나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석창에게 불상 얘긴 더하지 않았다. 석창인 자신이 원하는 물건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기필코 자기 물건으로 만드는 친구라 더 얘기할수 없었다. 그 불상은 그 누구에게도 팔거나 주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서울에 올라온 며칠뒤 나는 수락산 설아네 별장을 다시 찾았다.이미 설아에게 내 속마음을 들킨 이상 꽁무니를 뺄것도 없었다.무엇에 이끌린듯 그녀집을 들어섰다. 남자가 챙여야할 것도 약국에 들러 챙겼다. 그녀는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듯 나를 맞아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왔어? 빨간날 끝난지가 언젠데.... 우리가 좀 망가지더라도 후회는 말자 오빠” 그녀는 내게 속삭였다. 그렇게 다가오는 그녀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두꺼운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었다. 수컷의 예의가 아니었다. 그녀는 뱀처럼 나를 휘어감듯 밀치고 들어왔다. 그녀를 번쩍 들어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 있던 주방용품들이 쓰러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지나가면서 타투 그리는 물감통도 넘어지고, 식탁위로 매달려있는 샹글리제 조명등 한개가 우직끈 부러지는 것 같았다. 한바탕 광풍의 소용돌이가 지나갔다. 그녀와 다리 사이를 포갠채 몇 시간을 누워있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샤워하고 오겠다고 나간 사이... 그녀의 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타투니스트 설아 이름으로 되어 있는 각종 상들.물감, 수십종의 에어브러시, 수백가지 각종 식물 동물들의 편화 샘플과 타투문신들이 작품으로 걸려있었다. 문신한 남자모델들의 문신사진도 액자로 걸려있었다.자동차 공장에서나 씀직한 커다란 기계장비 같은 것도 있었다. 한참 문신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설아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머리칼엔 아직 물기가 촉촉히 젖어있었다. “오빠, 사진속 남자모델들 보니까 내가 플레이걸 같아보이지?” 그녀는 재미있다는듯 웃어보였다. “ 플레이걸은 무슨... 일로 만난거겠지” “ 일로 만나지않은 남자도 있었는데...호홋,..내가 좀 밝히거든. 내조상이 좀 밝히는 사람들이었나 호홋” 정말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내가 식탁에 턱을 괴자 그녀는 내 등쪽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등에 山이 잘 그려졌네...후훗... 오빠 근데.. 나 예전에 여기서 강간당할뻔 한일도 있다” “ 어 그래? 어쩌다가?” “응, 타투하는 장비중에 컴프레샤라고 에어를 뿜어주는 기계가 있어. 그런데 이 기계가 어느날 망가진거야. 그래서 컴프레샤 A/S기사를 불렀는데...갑자기 이놈이 내가 혼자사는줄 미리 알고 겁탈하려고 달려들더라고... 솔직히 그놈이 좀 잘생겼었다면 호홋, 또 몰랐는데..영 내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가스총은 집에 호신용으로 있었지만 거실 끝쪽에 있어서 어찌할수도 없고.. 그래서 순간, 기치를 발휘했지. “ 어떻게?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나는 벌써 묘한 질투심과 함께 목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 강간하려고 옷을 벗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는 문신아티스트니까 너의 생식기 주변에 문신을 그려넣어주겠다. 네 몸에 그리는 일을 허락해주면 오늘밤 너의 섹스파트너가 되주겠다 편안하게 놀자 그랬지. 그랬더니 그놈이 씨익 웃더니 ”까진년!“ 하면서 바로 바지를 내린채 벌러덩 눕더라고... “그래서 했어?” “그런데 오빠 이런게 있어. 문신이 그린다는 표현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바늘로 살을 수천번 뚫는거잖아. 호랑이 그림문신을 사타구니 양쪽에 그렸더니 피가 철철 넘치는거야. 거기까진 좋았는데 이 놈의 거기가 도무지 발기가 안되는거야. 사타구니가 아프니까. 몸이 말을 안들었던거지. 결국 그렇게 강간범을 잘 달래서 보내고 다음날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 큰일날뻔 했었어” “근데 경찰서에서 그놈이 범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했어? “실제로 그놈이 자긴 그런적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고 글세... 근데 내가 문신을 하면서 그놈 거기 털을 몇 개 뽑아놓았었거든. 경찰서에서 그걸 딱 가져다 보여주니까 그놈 바로 고개를 숙이더라구...“ “그런일도 있었구나. 결국 털 한 개가 범인을 잡게 된거네.서울 외곽에 살다보니 방범이나 치안문제.. 그런거도 잘해놔야할거 같다” 9. 불상의 개복 문제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확답을 주지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1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설아집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내가 갈때까지 창밖에 서서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계속 꼬면서... 참으로 기기묘묘한 그녀였다. 며칠뒤 불상전문가인 마포 동교동에 사시는 서민수 박사님을 찾았다.물론 불상도 함께였다. 날씨는 많이 풀려 곧 꽃들이 개화할듯 산들거렸다. 벨을 누르자 머리에 겨자색 두건을 두른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완담씨는 계절별로 보는거 같아요.드라마 대본 잘되요?” “아 네에 그럭저럭요. 박사님 연구실에 계세요?” “네에 들어가보세요. 완담씨 온다고 해서 콩국수 하려는데... 저이는 한번 이야기보따리 꺼내면 밥먹는것도 잊을텐데...나중에 완담씨가 조절좀 해주세요“ 서민수 박사님댁의 분위기는 늘 정겨웠다. 사모님은 교수의 사모임에도 늘 이웃아줌마처럼 수더분하게 대해주셨다. 박사님 또한 쟁쟁한 실력가임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셨다. 연구실에 들어갔더니 서박사님은 이미 불상에 관한 자료와 책, 티벳, 중국,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마야불상까지 찾아놓고 계셨다. “ 박사님 제가 너무 큰 숙제를 드린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 음.. 아니야, 아니야, 나도 공부도 하고 좋지뭐. 근데 자네 불상 가져왔나? “ 네 가져왔습니다” 상자안에서 불상을 꺼내 박사님께 보여드렸다. 동그란 돋보기로 10여분간 꼼꼼하게 보시더니 무릎을 탁 치셨다. “오호!~ 완담 자네 큰건 했구만... 했어, 아 참 멋스럽구만 멋스러워”. 박사님의 쾌재를 부르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던지 부엌에서 국수를 삼다가 사모님도 뛰어들어오셨다. “ 이게 바로 통일신라시대 악사이자 도공이었던 장아정(長牙情)의 ‘주악천인 금동불상’ 맞네” “장아정이요?” 나는 순간 수락산에 사는 장설아를 떠올렸다. 어떻게 된거지? 성까지 같은 것이었다. “자네 전화받고 싫은 중국에 아는 불상 전문가들에게 조언도 받고 여기저기 뒤져봤어. 근데 결정적인건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었고 전세계 포털사이트 구글에 나오는 장아정에 관한 전설이야기였어” 박사님이 건네준 프린트물을 보는 순간부터 내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프린트물에서 본 주악천인상의 사진은 지금 내가 갖고있는 불상과 똑같았다.그런데 구글사이트에 나온 불상은 주악천인상이 두 개였다. “ 박사님 근데 불상이 두 개네요” “ 응, 두 개가 맞아. 내용을 내가 자세히 봤거든. 자네도 많이 놀랄걸세. 내용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나중에 영화화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아. 자네가 시나리오 쓰면 내가 감수해줌세. 나중에 내게도 인세주는거네” 박사님은 새끼손가락을 보이며 내게 약속을 권하셨다. 나는 약속은 물론 복사까지 해보이며 박사님께 주악천인상에 대한 전설 얘기를 재촉했다. “일단 화관으로 치장한 주악천인상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네. 입상, 와불, 여래, 좌상 등이 있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부처가 거의 없다는 말일세. 그렇다면 주악천인은 부처냐? 부처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네. 좀 애매하지? 들어봐” “통일신라시대때 절세의 미남인 장아정이란 악공이 살았었어. 아정은 비파를 연주하는 왕궁악사였는데 비파를 연주하는 사람이 중국엔 있었지만 우리나라엔 거의 없어서 최고 신분인 이벌찬 이상의 대우를 크게 받으며 살았지. 특히 아정은 미려왕의 부인인 소현황후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지.소현황후가 비파연주를 무척 좋아했거든. 미려왕이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암튼 아정은 궁중악사여서 왕이 죽으면 함께 순장하게 되어 있었어. 왕이 어느날 신하들과 함께 맹수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도망가는 호랑이를 잡다가 호랑이털이 눈에 가시처럼 들어가게 된거야. 달리는 말에서 눈을 비비다가 그만 낙상사고로 돌아가시게돼. 아주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지. 왕이 승하하시게 되자 황후는 왕의 죽음보다는 자신이 연모하는 아정이 순장될까봐 노심초사하게돼. 결국 아정을 살릴 묘책을 꾸미게되지.아정이 죽기 며칠전 황후가 시위부(신라시대때의 경호기관)의 시위부령을 매수해서 붓 팔러다니던 붓장수 한명을 아정의 옷을 입혀 순장하게 한거지. 결국 황후의 사랑이 아정의 목숨을 구하게 된건데... 황후가 그당시 온(溫)씨라는 성을 가진 붓장수의 가족들에게 순은 3백근을 줬다지 아마. 붓장수가 안됐긴 했어 영문도 모르고 죽은거니까... 본의 아니게 온씨집안과 장씨집안은 몇백년 이상 원수지간이 된거지 결국... 그건 그렇고 아정도 황후의 은덕에 가만있지 않았지. 당시 두사람 관계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아정 역시도 황후를 살리기위해 머리를 깍고 불교에 귀의하게돼. 궁궐에서 도는 구설수를 끊어버린거지” “순장제도는 지증왕때 폐지되는데 그때 무렵인가요?” “ 그런 일이 있은후 생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해서 폐지하게되는거지. 중국에서는 진시황 이후까지도 순장은 계속 있어왔어” “이후 아정은 황후의 만남을 끊고 돈도 명예도 버리고 영문없이 죽임을 당한 온씨의 죽음을 평생 애도하면서 아정사(牙情寺)라는 절을 짓고 그곳에서 입적하게 되지” “그럼 두 사람 사이에서는 자손이 없었나요?” “그게 좀 애매해. 아정은 스님이고 소현은 황후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을거야. 통일신라 고문헌에 의하면 소현황후가 해마다 아정사를 들려 팔관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고 전해져. 연등을 당시에 3만개 넘게 달았다고 하니까 엄청난 숫자이지. 아정과 황후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수 없는 것이라 추론만 할뿐인거지”. “ 자손이 있었을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황후가 아정사 절에 다녀가면 한달 이상씩 머무르다 가곤 했으니까... 그거야뭐...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여기서부터야” 사모님은 삶은 국수가 다 뿔어터졌다며 울상을 짓고 연구실에서 그냥 나가셨다. 박사님과 나는 밥먹는것도 잊으면서 이야기꽃을 계속 피어나갔다. 아정은 비파 연주하는 일을 그만두고 절에서 청동보살 주물제작 공양을 하게돼. 불상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게 되는거지. 그런데 재미있는건 아정이 불상을 제작하면서 몸은 악기를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 얼굴은 황후의 얼굴로 만들었다는거야. 극락왕생하며 황후와 한몸을 이루고픈 아정의 지독한 열망이 아니었나 싶어. 희한한것은 아정이 불상속에다 자신의 터럭을 넣어 황후에게 줬다는거야. 그게 바로 자네가 갖고있는 이 주악천인금동불이라네. 황후가 갖고있던 나머지 한 개 불상은 당나라와의 전쟁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간뒤 다시 강대국들에게 약탈 당한뒤 아마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익명의 프랑스인에 의해 한번 나왔다가 유찰됐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네“ 그러니까 AD 935년에서 1000년의 고도를 넘어 아정이 만든 소현황후의 얼굴이 2013년 자네의 손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네.나도 지금 보고있고말야... 허허 어찌 흥분 안될수 있겠나“ “ 그럼 박사님 이 불상 개복(開腹)을 해야할까요?” “음... 불상을 개복한다는건 불교계에서 사불(死佛)을 뜻해.부처의 배를 가른다는 뜻인데 사불은 영원과 불멸이 찰라에 사라진다는 뜻일세. 모든 사바세계의 일상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거야. 자네도 나도 없고 모든 영겁의 인연이 원점으로 돌아가는거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정의 전설은 없어지는거야. 물론 아정과 황후의 사랑도 한순간 분진이 되어 없어지는거고... 고민이 되는 문제일세. 그런데 복장유물을 캐내지않으면 그 당시 이야기를 알수 없는것이네. 지금껏 내가 말한 부분은 모두 소설이 돼. 그래서 사람들은 복장유물을 꺼내서 증명하려고 하는거지. 타임캡슐처럼말이야 불상의 가격은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고.” “불상 가격이 대체 얼마나 나갈까요?” “글쎄 한 10억 이상 나가지 않겠어?“ “10억을 내가 말하긴 했지만 통일신라시대때의 문화재급이라면 가격을 매길수 없을거야. 그것도 아정과 황후의 사랑이 담긴 불상이라면...” 임자만 제대로 만난다면 그 이상도 나갈 수 있겠지.소더비경매장에 나간다면......그런데 인천공항세관을 통해서는 나갈 수 없을거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위반으로 자네는 공항에서 바로 잡혀 철창신세를 질수 있을껄“ “불상에 있는 복장유물은 안꺼내는 게 낫겠네요” “최근에 일본 관음사에 있는 불상을 우리 도굴꾼들이 훔쳐서 인사동에서 내다팔려다 잡힌적이 있다네. 자네도 알지?” “ 네에, 알지요.복장유물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약탈했다는 증거였지요” “그래 맞아, 누군가에게 불상을 준다고 할때는 복장유물을 다 빼고 준다는거야. 근데 이번에 발견된 불상은 복장에 유물이 담겨있었지. 일본이 약탈했다는 증거로 남게된거지”그런 면에서 볼때는 꺼내지 않는게 여러모로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하네“ “ 그럼 이 불상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해야하는건가요?” “그거야 전적으로 자네가 판단할 문제네. 자네가 갖고있다고 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은 없네. 문화재보호법 제 68조에 의거해서 기증하면 제값에 한 20% 정도 쳐주는걸로 알고있네만.... 외국에 밀반출 할때만 문화재보호법 위반이 되는거니까 너무 위축하진 말게”. “자네 친구중에 혹시 데이드림이라고 있지않나? 뉴에이지 피아노 연주하는...우리집에도 한두번 다녀갔었는데.. 내가 아는 이길상교수의 선배기도 하고” “ 네에 있지요. 대학 친군데... 후원은 늘상 적게 들어오고 매번 연주가 안된다고 난리에요. 최근엔 손가락까지 마비가 됐다고해서 미주알이란 모임의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있지요. 그 친구에게 이 불상을 잠시 빌려주면 손가락도 낫고 연주가 잘될까요?” 아정도 연주가고 데이드림도 연주가니까 무언가 통하는 면이 있을 것 같긴하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아정이 순장을 당하기전에 어쨌든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된거잖아. 아정사황후실기술(牙情寺皇后室記述)전기에 의하면 아정사에 가면 “죽은이를 위해 추모하는 노래가 끊이지 않게하라”는 문구가 구전처럼 전해내려오고 있다네. 데이드림도 추모곡을 연주하는지 모르겠네“ “ 그 친구 수십년전부터 추모곡을 많이 만들어서 연주해요. 1988년엔 고 이내창이란 중앙대 총학생장, 2009년엔 노근리희생자들, 2010년엔 재일동포 1세 영령을 위한 곡을 만들었구요. 2011년엔 스티브잡스를 위해서 곡을, 2013년엔 겨울연가 탤런트였던 박용하씨를 추모하는 곡을 연주했다고 해요. 나름 연주가로서의 영성도 발휘하고 있는 셈이죠” “자네가 그 사람에 대해 어찌 그리 잘아나? “저의 분신같은 친구에요. 제가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거든요 하하”. “그렇다면 이 불상은 데이드림 그사람 것이네.값비싼 물건이니 빌려만 주게 .아마 하늘에 있는 아정과 황후도 인정해주리라 믿네.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며칠전 제게도 희한한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나?” 주악천인상이 비파연주하는 불상, 지금으로 치면 기타를 치는거잖아요“ “그렇지,비파는 기타의 아버지지” “ 한달쯤인가 제가 우연한 기회에 신촌 시나위라는 까페에 갔다가 기타리스트 김영주라는 형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그 형님이 지방에 기타연주하러 가셨는데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데요 그날따라 그 형님이 얘기를 하시면서 많이 우시는거에요. 그러시면서 자신도 앞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의 연주를 많이 하겠다고...” “그래?” “네에 그래서 주악천인과 그 형님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 싶어서요“ “얘기 잘해줬는데.. 아정사 기둥 문구엔 해석이 안되는 글이 또 하나 있다네” “그래요? 그게 어떤 글인가요?“ ““죽은이를 위해 추모하는 노래가 끊이지 않게하라” 문자 끝에 ”무릇 연주의 완성은 연주를 들음에 듣는이의 귀와 눈에서 눈물을 보는것, 나의 말은 영겁을 거슬러 후대에도 전해질지니. 그대의 정염 또한 다시 건강해질지니“.이라고 적혀있어. 문맥은 잘 안맞지만 내가 보기엔 연주자는 눈물을 흘릴정도로 연주하면 그것이 바로 궁극의 연주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는걸세” 근데 정염 이말은 도저히 해석이 안되네“ “그런 심오한 문구가 있었네요” “근데 아정사는 어디에 있나요?” “오래전엔 아정사가 경주 토함산 근처에 있었는데 6.25 동란 나면서 절터가 모두 폐허가 됐고 현판만 겨우 건져서 수락산 어느 기슭으로 옮겼다는 얘기만 알고 나도 잘 모르네“ “수락산이요?” 나는 순간 정신이 버쩍 들었다, 수락산이라면 설아가 사는 곳 아닌가. 설아의 성도 장씨. 얼굴 생김새를 자세히 보니 불상에서 느껴지는 외모와 너무도 흡사했다. 나는 저녁밥 먹고 가라는 박사님의 권유를 정중히 사양하고 박사님댁에서 나왔다. 이젠 설아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소상하게 전할 차례였다. 10. 며칠뒤 설아네집을 찾아나섰다. 마침 설아는 아버지가 쓰시던 별장집이 팔려서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설아는 나를 보자 무척 반가와했다.나는 설아에게 박사님께 들었던 내용을 가능한 상세하게 알려줬다. 어느때는 상기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다, 어느때는 입가에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어느땐 눈물이 한참동안 고여있기도 했다. 아무리봐도 설아는 아정의 금동불상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래서 개복할거야?” 설아가 먼저 내게 물었다. 그 말은 어찌된 영문인지 개복하지말라는 투로 들렸다. “아니, 아쉽지만 그냥 부처의 배를 열지 않기로했어,그리고 이 불상 내가 잘아는 피아노연주가에게 잠시 빌려주기로 했어. 그 친구가 갖고 있으면 손도 낫고 연주를 더 잘할것 같아서” “그리고 이 이야기 내가 한번 드라마극본으로 써보려고, SBC 권국장이 받아줄진 모르지만...” “ 나랑 잔 얘기까지 쓰려고? 수락산 문신녀 정복괴담! 이렇게 호홋” “너 이름은 가명으로 할게 후훗”근데 혹시 설아야 살아생전 아버지에게서 ‘아정’이란 이름 들어본적 없어?” “ 아정, 아정! 글쎄....족보에서 봤었나? 글세.....” “응 모르면 됐고...” 설아는 아정에 대한 얘기 대목에서는 나와 끝까지 눈을 마주치지않았다. 11. 설아는 나와 만난지 한달뒤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그녀는 들어주겠다던 소원 한가지는 이미 이뤄졌지만 줄것이 또 있다며 작은 봉투 한 개를 선물했다. 그녀와 작별한 후 집에 와서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편지가 담긴 봉투속엔 터럭 한올과 아주 오래된 나무부스러기가 비닐에 각각 담겨있었다.그녀의 친필은 가지런했다. “담이오빠, 가족도, 그누구도 열지못했던 내 여성성(女性性)을 열어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처녀성이란 올가미에서 벗어난 느낌? 뭐라 표현 못하지만 홀가분해요.예전에 엄마 얘기 물으셨었지요? 엄마하고는 남남된지 오래에요. ”터럭?“ 그건 오빠 상상에 맡길께요. 여자니까 얘기안할래요. 나무 부스러기는 내가 이세상에 있기전, 나의 살이래요.(이건 생전의 아버지 말씀) 건강히 잘 지내요. p.s 아참 그리고 이제야 살짝 말하는데 오빠 만났을때 오빠등에 제가 아주 작은 문신하나 해넣었었어요.아팠었다면 미안 ^^* 당신을 올라탔다는 의미의 山 ^^* 설아 잊지말아요 안녕 -설아. A.J- 그렇게 적혀있었다. 등쪽 위라면 그때 따끔거리며 아팠던게 설아가 해넣은 문신때문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또 놀라운 사실은 A.J 아정? 그렇다면 설아는 ‘아정’이란 인물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터럭 한올은 누구의 것이고, 내 오래전 살이라는 나무부스러기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내몸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다시 하고싶은 마음이 생겨났다.그 어떤 약도 먹지 않았는데 남성이 기(氣)가 되살아난 것이다. 정말 알수 없는 일이었다. 연주를 정말 잘하려면 눈물이 나도록... 그대의 정염 또한 다시 건강해질지니“ 이말이 계속 가슴에 박혀왔다. 정말 불상의 영험함이었을까? 아니면 아정과 황후의 뜨거운 사랑이 1000년 넘어 다시 시작된 것일까? 설아는 정말 아정과 소현황후의 후손이었을까?... 12. 며칠뒤 서박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잠을 자다 받은 탓에 휴대폰 액정도 보지않고 바로 받았다.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서박사님인건 금방 알수 있었다. 카랑카랑하고 말끝마다 종결어미의 말투가 항상 위로 올라가있기 때문이다. 지방사투리를 서울말씨로 바꾸려다 생기는 왜곡된 발음일 수도 있었다. “아 자넨가. 날세, 잤었나?.해가 중천인데...” 수화기 너머로 공항 출입국 안내멘트가 계속 흘러나왔다. 공항인것 같았다. “음냐.. 아... 박사님.. 제가 어제 대본 수정하느라 밤을 새가주구요. 정신이 없습니다. 아마 오늘까지 드라마아이템 안주면 권국장이 저를 죽이려 들겁니다. 뭐 바쁜 일이세요? 아~ 불상 말씀하시는것 같은데,.. 박사님학교에 전시하는건 좀더 생각해볼께요... 청동이라 햇볕을 너무 쐬면 안된다고하네요..” “드라마아이템이야, 이번에 이거 불상 얘기 쓰면 되겠구만 뭐... 젊은 사람이 너무 무리하진 말게... 전시건으로 전화한건 아니고... 아 지금 나 인천공항인데 돈황벽화 학술대회포럼 참가하려 비행기 타는 중에 자네에게 전화했네. 별것은 아니고 혹시 이거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는데말야. 그... 아정과 사랑에 빠졌다던 ‘소현황후’ 말일세.. “ 아 네에 박사님” “그게 알고보니 소현황후가 아니라 설현황후더구만”. “네엣!~ 설? 설현황후요?” “ 어, 황후의 처녀때 이름이 소현이었는데...당시 백성들이 이름이 친숙하니까 소현황후, 소현황후 한거라는구만. 황후가 되면서 궁중 계보 규칙에 따라 역대 황후의 돌림자인 ,설,자로 바뀌었다는거야. 설- 인- 명- 덕-엄. 이런 식으로 말야. 뭐 큰 내용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해서 자네에게 알려주려고.. 그럼 잘......” 나는 손이 떨려... 휴대폰 저멀리 들려오는 서박사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받을수가 없었다. “여보게...! 여보게...! 여보게. 괜찮나?.. 차작가!..차작가......” “뚜뚜뚜뚜우...~~” 아니 그렇다면 설현황후의 설, 아정의 아. “설아..” 설아가.....설아가 아닌가.이런 세상에... 이럴수가.... 팔뚝의 살결이 닭비늘처럼 돋아오르면서... 내 모든 터럭이 하늘을 향해 쭈뼛하게 솟아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남성이 솟느냐, 안솟느냐는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책장 옆에 잘 모셔놓은 주악천인 불상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있는 것도 바로 그때였다. “관세음! ,관세음!, 나무관세음!~” <통일신라 주악천금동불> 주악천(奏樂天)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중 하나로 음악으로 불교 세계를 장엄하는 역할을 한다. 그 성격상 금동불의 광배나 석탑 기단부(基壇部) 등에 부가적인 장식으로 많이 조각되며 이처럼 독립된 금동제의 주악상은 매우 드물다. 이 금동제의 주악천상은 구름 위에서 오른쪽 무릎을 약간 세우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연주하는 천인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조각된 수작이다. 머리는 단정히 상투를 틀고 꽃 보관을 썼는데, 보관 띠는 바람에 날리듯 위로 치솟아 있다. 주악천은 통일신라 하대(下代)의 석탑이나 범종에서 일반화된다. 때문에 이 주악천의 조성 연대도 내려보기 쉽지만, 이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자세와 표정을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조각한 주악상은 9세기에는 보기 어렵다.이런 주악천은 불교의 화려한 세계, 특히 아미타여래가 계시는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장엄할 때 자주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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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rlett
2013-03-3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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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드림님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요? 끝까지 다 읽은 후 검색까지 해 봤다는... 그러고 보면 저 참 순진한 듯~ 제 고향은 주악천의 고향이기도 한 경주랍니다. 저희 집 윗 동네는 설씨 집성촌이었구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 설총도 떠오르네요. 참! 이 소설 해피엔딩이죠? 아무튼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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