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산문)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게으른 천성대로 놀면서 지내려 했더니 기대 밖의 벼슬에 임명되었네 갈수록 거미줄이 친친 얽히어 재갈 물린 말 신세 면하지 못하리 친하던 벗들 뒤얽혀 멀어져만 가고 세상살이 구불구불 위험해지네 힘없는 새처럼 성분대로 따르며 살지 억지로 힘쓴들 무엇이 되겠느냐 다산의 시 <세상살이 구불구불 위험해지네> 갈대꽃 한창인 물가에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 시냇가 시장가엔 한 줄기 맑은 연기 차가움 서린 뭇 봉우리에 석양빛 깃들였고 젖은 물새 한 쌍이 맑은 물결 차고나네 돛 내리려니 바람에 취한 술 깨우고 나팔소리 나자 누대위에 달이 뜬다 저 멀리 물에 비치는 게 잡는 등불들 어촌 풍경에 수심만 깃들이게 하네 다산의 시 <오연에 배를 띄우다> 18년 동안 혹한의 유배지에 있으면서 5백 여권 이상의 책을 쓴 사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의학, 과학,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과 문물을 아낌없이 베풀고 간 200년 전의 역사 속 사람. 다산 정약용의 얘기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위인에 대한 전기를 소상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인은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진 않는다. 때론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이 되어 타오르기도 하고 올바른 신념을 전수 받기도 한다. 한 사람의 곧은 삶이 또 다른 위인을 만들고 뜻을 품고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역사를 좋아한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한다. 중국이나 세계의 역사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나와 내 조상을 잇는 끈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유배지? 단어가 몹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다산은 외로움을 달래고 암울한 시절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을 텐데 낭만 섞인(?) 그 단어가 내게 유독 신비하게 느껴지는 값싼 심보는 무얼까? 그의 삶이 더욱 친근하게 여겨졌던 것은 어느 케이블 TV에서 <추리 활극 정약용>이란 사극을 보면서부터다. 잘 생긴 남자배우의 탁월한 연기도 한몫했지만 예술을 골고루 사랑하는 나에게 그의 다재다능한 면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또 있었다. 그가 당대의 내로라하는 서예가이자 석학, 추사 김정희에게 글공부를 가르쳤다는 얘기였다. 충격적 이었다.석학을 가르친 석학. 그를 만난 것은 한마디로 행운이었다. 책을 사서 겉장에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썼다. 차분하게 읽긴 했지만 내용이 딱딱해서인지 생각보다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책으로 만나기 전 그를 먼저 보고 싶었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책, 카메라와 노트를 챙겨 그의 생가로 떠나기로 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75-1’ 그가 고인이 되어 지금도 사는 생가 주소다.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1시간 남짓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며칠 전 엄청난 눈이 와서인지 길은 생각보다 험하고 날씨도 매서웠다. 하지만 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험한 길과 추위는 문제될 게 없었다. 생가에 들어서자 그의 초상화가 첫눈에 보였다.“네 이놈!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라” 라는 강직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살아 있다. 가슴 철렁대듯 눈매가 매섭다. 이마에 눈썹만한 흉터가 있다해서 붙여진 ‘삼미자’라는 별칭의 말이 재미있다. 아동들을 위해 아동문학 전집을 펴내고 수확기때 지주들이 긴 자를 만들어 곡식을 참탈하는 것을 보고 KS 규격 자를 만들었다는 그. 찬찬히 그를 알면 알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저 사람 정말 조선시대 사람 맞아?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스므살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한마디로 탄탄대로였다. 정조의 사랑과 격려 속에서 당시 왕과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니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애를 받는 것 이상으로 동료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니 안타까웠다. 왕에게 칭찬을 받고 총애를 받았다면 주위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따랐을 텐데 왜 질타의 대상이 되었을까? 궁금하여 잠시 책을 열어본다. 답은 책 속에 있었다. 그가 가진 다재다능한 학식과 견문이 그를 더욱 동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핍박당하게 만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핍박의 시작은 그를 아끼던 정조의 죽음, 그리고 천주교와 무관치 않다. 그의 집안이 천주교와 연루되어 있다 해서 그의 형제들이 유배를 가고 참형을 당했다. 셋째 형 약종은 천주교 신자임을 자처해 참수 당했고 약전은 귀양을 떠났다. 정약용도 핍박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사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그의 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유배지에서 몸을 추스르며 그를 지탱하게 해준 것은 붓과 종이였다. 그는 5백여 편의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했다. 특히 그의 시는 현대에 와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서정적이고 애수적이다. 20대 초반부터 그는 당대 유명한 시인으로 통했다. 정조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기재(奇才)라고 칭찬했다. 다산의 시를 읽고 본 사대부들은 그의 시를 보며 경계하다 못해 상서롭지 못해 못 봐주겠다 라며 힐난을 하기도 했다. 귀양길에서 형인 정약전과의 해후와 형제애는 가슴을 메이게 할 정도로 구슬프다. 살아서는 미워할 밤남정 주막 문앞에는 두 갈래로 길이 갈렸네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지는 꽃잎처럼 흩날려 버렸네 넓디넓은 하늘 땅 바라보노라면 예전에야 한 집안이 아니었던가 조심스럽게 제 몸뚱이만 살피다보니 슬픈 생각 언제나 가엾구려 7년째 흑산도에서 귀양살이 하던 형의 편지를 받고 읇은 그의 시이다. 책을 읽으면서 결정적인 감동은 여기서부터다. 20세 초반에 소과에 급제,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왕의 총애를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린 정약용. 예문관 검열,홍문관 수찬.동부승지, 병조참의,문도공을 지내며 남부럽지 않은 관료생활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백성을 위한 마음을 늘 간직하며 살았다. 질병으로 고생하거나 죽어가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홍역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준 의서 ‘마과회통’ 12권을 지었다. 또한 병조참의를 지내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백성을 풀어주고 추리수사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살인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기도 했다. 암행어사를 하며 부조리를 타파하고 소작농의 편에서 곡식을 사재기하는 지주들과 탐관들을 벌주기도 했다. 설화에서나 나올 법한 권선징악의 얘기들을..., 특히 유교사상이 팽배해 있었을 조선시대 때 고관대작으로 있던 그가 약한 자의 편에서 이렇게 일을 처리했다는 것은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한국판 원더우먼, 수퍼맨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81년 시인 김남주는 그를 조선의 자랑이라고 말하며 고금동서를 두루 살핀 거봉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200년 전에 지은 목민심서는 고전이다. 그렇지만 현재에 이르러 청렴결백한 마음으로 그런 귀한 책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무원들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책으로 엮고자 하는 저자는 몇 명이나 될까? 이제 책을 덮는다. 곧은 성품과 방대한 지식을 연마해온 그를 우리는 너무도 홀대한 것이 아닐까. 중국으로부터 기중기를 들여와 수원성을 쌓고 경제학, 사회학, 문학, 그림, 법학, 시, 의학 토목 경영, 수사학에 능통했던 그는 자신이 죽기 10년 전 직접 적은 묘비명을 통해 미래의 죽음과 삶을 정돈하기도 했다. 그의 묘비명엔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자들에 대한 평가와 용서, 왕에 대한 감사, 자신이 가꾼 지식에 대한 덧없음, 그리고 겸손이 곳곳에 배어 있다. 푸른 소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져 있는 그의 묘소에 올라가 보았다. 부인 홍씨와 함께 묻혀 있는 그 산소에 키 작은 참새가 날아 앉았다. 그가 세상에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를 대신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싫지 않았다. 수많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집필에 몰두했던 정약용. 적막한 유배지에서 자신의 불행한 삶을 탓하지 않고 5백여 권의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했던 조선의 대학자. 러시아 사회운동에 참여해 사형장까지 끌려갔지만 감히 죽일 수 없었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몇 세대를 지난 지금 그가 남긴 책과, 그의 숨결이 살아있는 생가를 통해 만난 정약용. 내 인생에 불쑥 찾아와 ‘치열한 글을 쓰라’ 고 말하는 정약용.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며, 또한 내 삶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결코, 묻힐 수 없는 위대한 인물, 정약용. 나를 움직이고 우리를 움직이는, 그래서 오랫동안 펼쳐놓고 싶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
|
디기탈리스
2010-01-20 07:50
|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그 분은 역사속에 묻혔다. 제대로 된 사람들은 귀양을 시키고 좌천을 시켰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는 정치인것을 깨닫습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라> 맞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똑바로 사는 것이 대응하는 방법인듯 해요. 다산 정약용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어 이 겨울이 훈훈해요. 동양의 레오나르드다빈치. 대문호 도스트예프스키. 누군가는 이렇게 역사에서 끌어내어. 보석보다도 빛나는 그의 삶에 조명을 비춰야 한다. 해남의 땅 끝 마을. 보길도에서 만난 고산 윤선도님. 그를 다시 만났던 두해전이 생각난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살아서 꿈틀대는 무엇, 그들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작은 몸짓으로 실천하는. 귀한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세상은 살아볼 만 하죠.~
|
|||||||
|
||||||||
연세영 |
디기탈리스
2010-01-20 11:46
|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한국사편지> 박은봉저자..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역사의 맥을 위해. 일주일을 꽁꽁거리며 읽었던 적이 있어요.~ 성균관 대학교몇 대기업과 은행 사원채용시 한국사를 시험으로 본다는 희망적인 일.~ 역사를 바로 아는 자만이 기업도 학교도 세워나갈 자본이라나는 것을.. 이른아침부터 비가 내려요. 하루종일 내릴 것 같네요.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