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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지팡이
지팡이 시.연세영 저 멀리, 터벅터벅 소리 들립니다 잠시 걸터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내딛는 발이 보입니다 참으로 시대가 암울해 점령군의 주인공이 되었던 발자국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극악스레 밟아대던 야만의 목발은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매일밤 누군가의 통곡이 하여간, 어린 가족들의 분노가 100% 지팡이 때문이었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미국에서 오셨다가 깜빡 두고가신 지팡이를 꺼내봅니다 꾸부정한 어깨 아래 구멍 숭숭난 관절에 미움을 꼭꼭 숨긴 채 걸어봅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아들은 그의 걸음처럼 걷습니다 거의 흡사한 표정으로 걷습니다 지팡이의 족적은 닮지말라해도 닮아 있습니다 지팡이 자국이 말 줄임표처럼 찍혀 갑니다 한세대가 지나감에 있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 명절엔 전화는 드려야겠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걸어오신 길가에 나쁜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고, 절뚝대며 휘청이긴 하였지만 온가족이 1980년을 지나오며 분명, 그 지팡이로라도 지탱하는 나날이 있었다고 전해드려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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