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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과 그림에 대한 대화 47화
<소설 정약용 47화> 약용은 약간 긴장했지만 노승의 말을 듣고 싶었다. “ 네, 그럼요 스님, 기탄없이 말씀해주시지요. 제겐 약과 꿀이 되는 얘기입니다” “그림도 많고, 사람도 많다보니 그림 그리는 방식도 다릅니다. 제가 몇십년 중질을 하다보니 그런 게 보이더군요” 노승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화백 중엔 그림을 진중하고 노동력있게 그리는 사람, 재주로 반짝하는 사람, 노동력은 없지만 노동력을 속이는 사람, 객기로 그리는 사람, 인기를 업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남의 그림을 베끼는 사람, 문지방만 들락달락하고 끝내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누군가에게 대신 그리게 하는 사람, 그림보다 외모에 더 신경쓰는 사람, 그림을 붓으로 그리지않고 머리로 그리는 사람, 기본기를 익히지 않고 선을 넘으려는 사람,실력보다는 재료탓을 하는 사람, 돈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그림이 너무 가벼워 위태로운 사람,자기 그림에 빠져 자아도취하는 사람, 그리고 아예 실력이 없는 사람 등이 있지요”. 약용은 양심에 찔렸지만 용기를 갖고 되물었다. “그럼 스님,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입니까?”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차를 단아하게 마셨다. 얼마간 두사람은 그림 얘기없이 차만 마셨다. 겸연쩍을 정도였다.노승이 천천히 운을 뗐다. “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림을 사가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의 눈은 다 똑같지요”. “그럼 제 작품을 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 작품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불러주는 말입니다. 그냥 작가에게는 작가가 낳은 자식이거나 그림일 뿐인 거지요” “아 그렇군요...그러면 제 그림을 좀 품평해주신다면....” 노승은 눈을 지그시 뜨며 약용을 바라보았다. 그 눈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아마도 본인이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품평을 받는다는 것은 곧 기대감이 있는 것인데... 그림이 기대감 만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도 빈승이 말씀 드렸듯, 좋은 그림은 누구나 다 압니다. 좋은 건 다 알아본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그림을 잘못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약용은 약간 심통이 나서 말대답을 했다. “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루세끼 밥을 먹고 생식하고 번성해 결국 사람의 일가를 이루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그림의 호흡이라는 것은 세대가 바뀌고 몇 천년 세월이 변해도 언젠가 그 진가는 다 알아줍니다.좋은 그림은 언젠가 다 도드라지기 마련인 것이지요.” “ 아 그렇군요... 이 그림을 스님께 드리려고 갖고 왔는데... 좀더 보수하고 다듬어야겠지요?” “ 갖고 오신거니 받겠습니다만...일가를 이룰것이 아니라면 그냥 취미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연유는 지금 이시간에도 피를 물감삼아 붓을 채찍삼아 정진하는 작가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림보다는 글을 연마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아 네에... 스님...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약용의 귀볼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 멀리까지 오셨는데 제가 좀 서운한 말씀을 드렸나 모르겠습니다” “ 에휴,.... 아닙니다. 천만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노승의 그림에 대한 철학은 얼음장처럼 단호했다. 그림은 전문 화백에게 맡기고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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